32년 전통 은행을 무너뜨린 한 사람 — 영화 〈겜블〉이 말하는 돈과 신뢰
영화 〈겜블〉(원제: Rogue Trader , 1999)은 232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스(바링스) 은행을 단 한 명의 직원이 무너뜨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완 맥그리거가 열연한 주인공 닉 리슨은 처음엔 누구나 응원하고 싶은 청년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뛰어난 능력 하나로 런던 최고의 금융회사에 입사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성장한 사람. 우리는 그의 이야기가 따뜻한 성공담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성공은 어디서 시작되고, 욕망은 어디서 끝나는가?" 싱가포르 지점의 거래 책임자로 발령받은 닉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로 가득 찬 팀을 이끌며 공을 세우기 위해 위험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다가 '88888'이라는 가짜 계좌를 만들어 손실을 감추기 시작한다. 처음엔 작은 실수를 덮으려 한 것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선택, "이번 한 번만 넘기면 돼"라는 생각. 그런데 그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면서, 닉은 거대한 거짓말의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는 잘못된 탐욕과 욕망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라는 것, 그리고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가 비극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닉의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런던 본사는 싱가포르 지점에서 어마어마한 수익이 들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았다. '좋은 성과'가 나오는 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금융의 아이러니다. 수익이 나면 영웅이 되고, 손실이 드러나면 악인이 된다. 금융이란 본디 신뢰 를 기반으로 한다. 은행은 예금자의 믿음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주식 시장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가치를 매기는 공간이다. 결국 닉이 은폐한 손실은 8억 파운드를 넘어섰고, 베어링스 은행은 파산에 이르렀다. 232년이라는 세월이 쌓아올린 신뢰가, 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