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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썬》 : 기억의 파편으로 맞춘 아버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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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파편으로 맞춘 아버지의 얼굴 영화 《애프터썬》 : 우울의 심리학과 사후적 이해 [에세이] 덧발라진 햇볕 아래 숨겨진 그림자 서른한 살이 된 소피가 오래된 캠코더의 재생 버튼을 누를 때, 화면 속에는 20년 전 튀르키예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나온다. 영상 속의 아버지는 다정하고,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딸의 열한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소피의 눈에 비친 그 여름은 더 이상 단순한 추억의 페이지가 아니다. 그것은 차마 다 읽지 못했던 부조리한 슬픔의 기록이자, 이제야 겨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비명'이다. 심리학적으로 《애프터썬》은 '사후적 이해(Nachträglichkeit)'의 과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부모를 절대적인 보호자로 인식한다. 그들에게도 짙은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엔 우리의 세계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소피는 캠코더라는 렌즈를 통해 과거를 복기하며,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행간을 읽어낸다. 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베란다에 위태롭게 서 있던 아버지, 어둠 속에서 발작하듯 춤을 추던 그의 뒷모습은 그가 앓고 있던 지독한 우울의 증거들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려 애쓴다. 호신술을 가르치고 태극권을 권하며, 자신은 정작 마음의 중심을 잃고 침몰하면서도 딸만큼은 단단한 땅 위에 서기를 갈망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비극성은 캘럼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절박했기에 발생한다. 그는 자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사랑이라는 덧물을 끊임없이 끼얹지만, 그 아래 숨겨진 우울이라는 그림자는 햇볕이 뜨거울수록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영화의 제목인 '애프터썬'은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진정시키는 로션을 의미한다. 화상은 해가 진 후에야 그 통증을 온전히 드러낸다. 소피에게 그 여름은 찬란한 빛이었지만, 20년...